광해군묘
광해군묘

아버지가 싫어했던 왕자

광해군의 아버지인 조선 14대 왕 선조는 광해군에게 다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한다. 선조는 정실 부인과는 자식이 없었고, 광해군의 형은 성격이 포악해서 왕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선조는 이미 사랑하는 후궁의 자식인 신성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신성군은 피난길에서 병이 들어 죽고 만다. 전쟁 중에 백성들을 지휘할 역할을 할 왕자가 필요했던 선조는 어쩔 수 없이 광해군을 세자로 임명하였던 것이다.

 

임진왜란의 영웅

세자로 임명된 광해군은 평양성을 지키며 전쟁을 지휘하였다. 세자가 직접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 지역으로 들어가 군수품을 확보하는 한편, 일본군이 휩쓸고 간 지역의 백성들을 위로했다. 나라에서 지원한 식량과 군수품이 각 지역에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지휘관들을 감시하고 독려하였다.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백성들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가기 바빴던 선조와는 크게 다른 모습이었다.

 

이에 백성들은 광해군을 지지하며 환호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무능한 왕 중에 하나로 평가받는 선조는 그런 아들을 기특하게 생각하기는커녕 경계하였고 질투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도, 그는 많은 공을 세웠지만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였다.

 

광해군의 빛과 그늘

마침내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조선 15대 왕이 되었다. 그는 왕이 된 후에 전쟁으로 인해 추락한 왕의 권위를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세자 시절에 임진왜란을 이끌었었던 총명함은 사라진 듯하였다.


정치적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유배시켜 죽게 하는 등, 왕의 세력에 도전하는 모든 세력을 제거하였다. 궁궐 복원 공사도 문제가 되었다. 왕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웅장한 궁궐 공사는 과거 다른 왕들도 시행했던 정책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백성들은 오랜 전쟁으로 지쳐 있었고, 왕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공사는 오히려 왕에 대한 민심을 떠나게 하였다.

 

조세개혁인 대동법을 시행하여 백성들의 삶을 편하게 하고자 하였으나, 떠나간 민심을 되돌리기엔 부족했다. 그리고 대동법도 양반들의 반대로 제대로 수행될 수가 없었다. 


왕권의 강화를 위해 중요한 자리에 자신의 측근들을 임명하였지만, 이들은 오히려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그리고 그들은 광해군에게 온갖 아첨만을 하여 판단력을 흩트려 놓았다.

하지만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조선이 다시 전쟁 속에 휘말려 드는 것을 막았다. 당시 중국은 명나라가 쇠퇴하고 후금이 강성해져 있었다. 명나라는 조선에게 지원군을 요청하였고, 광해군은 지원군을 파견하였지만, 조선 명나라 연합군은 전쟁에서 크게 패하고 만다.

 

이에 광해군은 후금에게 군사를 파병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하며 후금에게 우호적인 외교 정책을 펴게 된다. 이런 중립외교는 후세 역사가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지만, 당시 조선에서는 명나라를 배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후금 같은 야만족의 나라와 가깝게 지낼 수도 없는 것이었다.

 

폐위와 유배. 그리고 죽음

1623년 3월 새벽. 인조반정이 일어난다. 광해군은 폐위되었고,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그가 죽인 영창대군과 같은 유배지로 가게 된 것이었다. 그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유배지가 제주도로 옮겨지고, 집에서 나오지 못하게 철저하게 격리되고 만다.

 

긴 유배 생활 동안에 그를 감시하고 도움을 주던 여종과 포졸들로부터 심한 모욕도 당했다고 한다. 힘든 유배지에서도 장수한 광해군은 67 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세자 시절에는 임진왜란의 영웅이었고, 왕이 되어 절대권력을 휘둘렀다. 그리고 폐위돼서 멀고도 먼 제주도까지 유배돼서 삶을 마감한 것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그는 멀고 먼 제주도 유배지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광해군이 폐위된 뒤 들어선 인조 정권은 금나라를 배척하는 정책을 실행하였고, 이내 조선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번의 큰 전쟁에 휘말려서 전 국토가 유린당하고 만다.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얼마나 현명한 외교 정책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명이었다.

 

현재에도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강대국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 대한민국에게 광해군의 외교 정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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