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
사도세자

축복받은 탄생과 총명했던 어린 시절

사도세자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첫째 아들도 병에 걸려 어린 나이에 사망했던 터라, 영조는 늦은 나이에 가지게 된 둘째 아들의 탄생을 진심으로 기뻐하였다고 한다. 그가 태어난 지 불과 1년 만에 왕세자로 책봉된 것만 보더라도, 영조가 그를 얼마나 귀하게 아꼈는지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사도세자는 영조가 바라는 대로 성장하는 듯하였다. 어린 나이에 글을 배워 중국 고서를 읽고, 그 뜻을 실천하려고 하는 행동마저 보이니 영조는 그런 사도세자의 모습을 보고 무척 행복해하였을 것이다. 어린 사도세자가 읽을 책까지 직접 만들어서 주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어린 시절의 영특함이 오히려 그에게 큰 불행이었을까. 그에 대한 영조의 사랑은 점점 과도한 기대와 병적인 집착으로 이어져갔다.

 

영조의 핍박

영조의 사도세자의 사랑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어졌다. 영조는 어린 그를 어머니와 떨어뜨려 지내게 했다. 사도세자의 어머니가 출신이 좋지 못하여 귀하게 얻은 아들이 행여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할까 봐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는 점점 심해지는 아버지의 핍박에 의해 점점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만다.


사도세자가 조금 컸을 무렵부터, 영조는 그의 탄생을 그렇게 행복해했던 아버지가 맞았나 싶을 정도의 핍박을 하기 시작한다. 그가 조금이라도 공부를 게을리하면 호되게 혼냈다. 어린 나이에 조금이라도 뛰어놀고 싶으면 거짓말을 하면서 두려워하며 지내야 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는 마음에 들지 않은 행동을 기억하고 있다가, 대신들이 모두 모인 날 앞에 세워두고 행동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구박하며 망신을 주었다고 한다.


영조는 무슨 이유라도 들어서 아들을 괴롭히고 싶어 한 것 같았다. 심지어 날씨가 흐려도, 비가 와도, 어느 지역에 가뭄이 들어도 모두 세자 탓을 하며 구박하였다. 사도세자는 이후로 매일 일어나면 날씨부터 확인하고 걱정하며 살았다고 한다.


공부에 관해서도 끊임없이 트집을 잡았다. 아버지가 아들의 공부 내용을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영조는 어떤 경우라도 그를 구박하였다. 아버지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면 당연히 혼났고, 제대로 답을 해도 억지로 공부를 해서 얻은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구박하였다. 그는 계속적인 아버지의 핍박에 아버지를 무서워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대화를 하면 말을 더듬었는데 영조는 그것조차 공부가 부족해서 바로 대답을 못하는 거라며 구박하였다.


병이 들었어도 그는 계속 공부를 계속했어야 했다. 우울증이 원인이 된 심각한 가슴통증과 어지럼증이 와도 쉬지 못하였다. 보다 못한 스승들이 영조에게 사도세자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을 해도, 영조는 공부하기 싫어서 꾀병을 부리는 것이라며 오히려 그날 공부한 내용에 대해서 시험을 보았다고 한다.

 

사도세자가 성인이 되고서도 영조의 괴롭힘은 계속되었다. 그에게 대리청정을 시키면서 갈등은 정점을 이루었다. 어떤 정책을 사도세자가 판단하여 결정하면 뒤에서 듣고 있던 영조는 아버지에게 의견도 묻지 않았다고 질책하였다.


이번엔 반대로 정책에 대한 질문을 하면 그런 사소한 것까지 아버지에게 물어본다고 대신들 앞에서 구박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내 대리청정을 취소하고 없던 일로 만들었다. 대리청정 사건들로 아무도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오직 사도세자만 신하들 앞에서 굴욕을 당하는 일이 되풀이된 것이었다.


역사학자들은 대리청정 사건들은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으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한다. 당시 노론과 소론의 당파싸움이 계속적으로 진행되어 왔었다. 사도세자가 소론을 지지하는 정책들을 결정하려고 하자, 위협을 느낀 노론 측에서 사도세자와 영조의 사이를 더욱 이간질시켰다는 견해도 있다.

 

뒤주 속에 갇혀 죽임을 당하다

사도세자는 마침내 이성의 끈을 놓고 만다. 정신질환이 오고 말아 자신의 내시와 여종 등을 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살해된 사람만 백여 명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그의 광기는 여종들과 내시에만 그치지 않고 심지어 어머니에게까지 칼을 휘두르는 상태까지 오고 말았다. 당시 그가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을 했다는 기록에서 심각한 정신질환에서 온 이상 행동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사도세자의 행동을 보고 받은 영조는 그에게 자결을 명령하였고, 자결을 하지 않자 뒤주에 가두고 물 한 모금 주지 말라고 명령한다. 며칠 후 사도 세자는 27세의 짧은 나이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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