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의 최고 공신
태종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이다. 무인인 아버지와는 달리 학문을 더 좋아하였고, 형제들 중에 유일하게 과거시험에도 급제하였다고 한다. 이성계는 늘 자신이 무인 출신이라 학문이 부족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었다. 아들이 과거 시험에 급제하였을 때, 몇 번이나 궁궐을 향해 절을 올릴 정도로 무척 기뻐하였다고 한다.
조선 개국 과정에서 이방원의 활약상은 절대적이었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시, 그의 형들은 아버지를 돕고 있었다. 그는 홀로 목숨을 걸고 개경에 있는 가족을 구조하였다. 이성계가 그에게 가족들의 안전을 맡길 정도로 당시에는 믿음과 신뢰가 두터웠던 것이다.
이어 정권을 잡은 이성계는 최대 정적인 정몽주 일파에게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린다. 이미 군권을 장악한 상태였지만 고려 민중들에게 정몽주는 정신적인 우상이어서 함부로 그를 죽일 수 없었다. 확실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던 이성계 일파는 이성계의 낙마 사고로 인해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이때 이방원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몽주를 제거하여 이성계 일파 및 가족들을 위기에서 구해낸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성계와 이방원의 사이는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때는 확실한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였다. 정치적으로 미숙한 아버지와 형제들을 대신하여 이방원이 결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처음부터 이성계는 비정하고 복잡한 정치와는 맞지 않는 단순한 무인이었을 뿐이었다.
조선의 건국과 싹트는 불행의 씨앗
1392년 이성계가 왕에 오르며 조선이 건국된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이성계 가족에게 문제가 생긴다. 첫째 부인의 자식들을 제치고 둘째 부인의 자식인 어린아이인 이방석을 세자로 삼았다. 다시 한번 이성계가 정치적 실수를 한 것이었다. 물론, 정도전 등의 개국공신 일파의 주장을 무시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 역사들을 보면 왕위 계승의 순서가 어긋나면 어김없이 비극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성계가 자신의 뜻대로 왕위 계승을 실행하려고 했으면 첫째 부인의 아들들, 특히 형제들 중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이방원에 대한 냉혹한 결정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자식을 죽이는 냉혹한 결정도 못하였고, 무리하게 이방석을 세자에 임명함으로써 이방원에게 난을 일으킬 명분까지 주고 말았다. 결국 왕자의 난이라는 왕실의 비극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오직 왕권 강화를 위해 살아가다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세자 이방석과 정도전 일파 등을 제거한다. 이후부터 그는 권력을 장악하고, 왕이 될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이방간의 왕자의 난이 있었지만 이숙번과 부인 민씨 일가의 활약으로 진압하게 된다. 반란을 진압하고 얼마 후 형인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받아, 마침내 조선 3대 국왕인 태종이 된다.
왕이 되어서도 그는 왕권 강화를 명분으로 측근들을 숙청해 나간다. 특히 왕후의 가문인 민씨 가문은 가혹하게 탄압했다. 자신도 외척들에게 제거를 당할 뻔했었고, 과거를 보더라도 외척들의 권력이 강해져서 왕권에 도전했던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왕후를 포함하여 민씨 가문은 이방원이 왕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와는 달랐다. 냉정한 정치적 결단을 내리며 민씨 가문의 네 명의 아들을 죽이게 된다. 그의 외척의 경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훗날, 세종이 되는 충녕 대군의 장인인 심온도 누명을 씌워서 제거해 버린다. 오직 왕권의 강화만을 위해 행동하고 존재하는 피의 군주의 모습이었다.
성군의 칭송은 아들에게
가혹한 피의 군주인 그에게도 뜻대로 안 되는 게 있었다. 바로 자식 문제였다. 첫째인 양녕대군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집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와서 민씨 가문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 동생들과는 달리 어머니 집안이 몰락하는 과정을 고통스럽게 보고 들어야 했다.
이방원은 그런 아들에게 자신과 같은 냉정한 왕이 되어야 한다고만 강요하였다. 하지만 양녕대군은 성장해오면서 받은 상처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였고, 다음 왕위는 넷째 아들인 충녕 대군이 물려받게 된다.
이방원의 가혹한 숙청으로 인해 더 이상 왕권에 도전할 세력은 없었다. 왕위를 물려받은 세종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찬란한 문명의 시대를 열어간다. 결국 자신이 꿈꿔왔던 조선의 모습을 이룩한 태종 이방원은 1422년 56 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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