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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 조자룡은 유비의 아들을 구해내는 등의 공을 세우며 유비를 위해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소설 삼국지에서 그의 활약상은 관우, 장비에 못지않다.

조운
조운

평생의 주군을 만나다

조운은 생애 초반에 공손찬을 모시고 있었다. 공손찬은 중국 북쪽 지역에서 원소와 더불어 강자였는데, 유비는 주위 상황이 어려워지자 공손찬에게 가서 몸을 의탁한다. 이때, 그와 유비의 만남이 시작된 것이었다. 역사의 기록에서 보면 두 사람의 만남 이야기는 여기까지이고, 이후 기록에서 그와 유비가 계속 같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는 이 시기에 어느 정도 군신의 관계를 맺었을 것이라 추정하는 것이다.

 

소설 삼국지에서는 조운이 유비의 인성에 반하여 유비에게 꼭 자신이 찾아가겠다고 말을 전하였고, 그가 마음에 들었었던 유비 또한 이를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주군의 아들을 구하다

유비는 장판이라는 지역에서 조조의 군대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었다. 너무 급하게 도망가다 보니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오지 못하였다. 이에 조운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적진에 뛰어든다. 간신히 유비의 아내와 아들을 만난 그는 아이는 품에 안고 부인을 보호하며 탈출로를 찾는다.

 

그는 마치 무예에 초월한 사람처럼 창 하나로 조조 군을 휘젓고 다니며 탈출구를 찾았고, 이런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던 조조는 그를 사로잡아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에 생포하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그를 죽이기도 힘든 와중에 생포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결국 조조 군을 탈출한 그는 유비에게 무사히 아이를 안겨주었고, 유비는 아이 때문에 좋은 장수를 잃을 뻔했다며 아이를 풀숲 바닥에 내팽개쳤다고 한다.


위의 내용들은 소설 삼국지에서 장판 지역에서의 조운의 활약상을 묘사한 내용이고, 실제 역사 기록에서는 그가 장판 지역에서 유비의 아들과 아내를 구하였다는 짧은 한 문장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아이와 여성을 구조하는 장수가 멀리서도 자신들이 보일 수 있는 적진 한가운데를 돌파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실제로는 길이 험한 곳으로 조조의 군대와 마주치지 않게 탈출하였고, 그 와중에 마주치게 된 조조의 병사들을 무찌른 정도였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그의 무력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매우 과장된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적 부대가 점령한 지역으로 홀로 들어가서 여인과 아이를 구하는 어려운 업무를 해낸 것은 분명히 사실이고, 그의 용맹함을 충분히 보여주는 일인 것이다.

 

유비 세력 내에서의 조운의 역할

소설 삼국지에서 조운이 군대를 이끌고 큰 전쟁을 벌였던 일은 손에 꼽는다. 유비의 아들을 구한일처럼 유비 곁을 보좌하는 일이나 제갈량의 계책을 일부 수행하는 역할들 뿐이다. 물론 제갈량이 유비 세력에 등장한 이후부터, 유비 장수들이 제갈량의 완벽한 계책의 부속품 같은 역할로 그려진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제갈량의 완벽한 계책으로 승리를 얻는 모습은 소설 삼국지의 훌륭한 매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보다 늦게 유비 세력에 합류하는 황충이나 위연 보다도 그의 군대 지휘 장면은 적어 보인다. 그래서 어떤 역사가들은 그의 역할이 군을 지휘하는 장군보다 유비나 제갈량을 보좌하는 친위대 장군에 가깝지 않나 얘기하기도 한다.

 

소설에서 나오는 '오호장군(관우, 장비, 조운, 황충, 마초)'도 역사 기록에서는 조운이 빠진 4명만 정예 장군의 칭호를 받았다고 나와있다. 이런 점을 보면 소설 초반에 그의 역할을 관우, 장비급으로 묘사해 두어서, 후반까지 계속 비슷한 설정을 유지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역할이 절대 작아 보이지 않는다. 역사의 기록들을 보면, 황제나 권력자들의 친위대 장수들은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들이었고, 실제로 그들의 권력은 막강했다. 이런 위치에서도 그는 성품도 뛰어나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조운이 유비 세력 내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든 간에 그는 죽을 때까지 촉나라를 위해 충성하였다. 특히, 학식과 인품도 매우 뛰어나서 용맹만 믿고 오만방자하지 않으니, 유비나 제갈량이 그를 곁에 두고 다른 장수들이 못하는 특수하고 중요한 일들만을 맡겼을지도 모른다. 그가 죽었을 때는 유비는 이미 죽었고, 황제는 유비의 아들 유선이었다. 유선은 자신을 어렸을 때 살려준 그를 위해 애도하며 시호를 지어 찬양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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