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 봉추를 얻었음에도 통일의 대업을 이루지 못하였던 소설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에 대하여 알아보자.

유비
유비

바닥에서 시작한 황족

유비는 한나라 황족의 혈통이다. 황족의 혈통이었지만 수많은 후손들 중의 하나였던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가난하게 살았다고 전해진다. 유년시절 학당에서도 그는 책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그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의용군을 모집하는데, 이 와중에 운명적으로 인연들을 만나는데, 바로 관우와 장비였다.

 

이후부터 그들은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며 온갖 역경을 해쳐나가게 된다. 일부 사람들은 관우와 장비가 일찍부터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가 유비 세력에 들어와서였을 것이라고 한다. 유비 세력이 워낙 작아서 두 장수가 바로 군대를 이끌고 싸울 수 있었고, 또 적은 병력을 이끌고도 출중한 두 장수가 활약하며 싸워가니 주위 사람들한테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 기반이 약하게 시작한 그들은 이후 수많은 역경을 해쳐나가야 했다. 

 

와룡, 봉추를 얻고 전성기를 열다

유비는 조조를 피해 유표가 다스리는 형주 지역에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 형주 지역에 명성이 높은 학자가 있었는데, 그 학자가 바로 제갈량이었다. 그는 어려움 끝에 제갈량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당시 형주 지역의 뛰어난 인재 두 명의 명성이 높았는데 와룡과 봉추였다. 두 명중 한 명인 와룡을 얻은 것이다. 

 

이후, 유비는 손권과 연합하여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다. 이때 그는 손권보다 한 발 앞서 형주 지역을 공략하여 자신의 세력권으로 만든다. 이어서 그는 형주 지역에 이어 형주 남부 지역까지 모두 차지하게 되는데, 이 와중에서 방통을 만난다.
처음에 방통은 낮은 직급의 관직으로 일을 하였지만, 이내 능력을 인정받아 책사의 위치까지 오르게 된다.

 

마침내 유비가 와룡과 봉추, 모두 얻게 되는 순간이었다. 두 명의 천재 책사를 얻은 그의 세력의 기세는 놀라웠다. 급격하게 세력을 확장하더니 익주 지역을 얻고자 군을 일으키게 된다.

 

비록 여러 기록에서 그는 인의를 저버리고 무력으로써 익주 지역을 차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이미 익주 지역의 중요성을 제갈량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들었었고, 방통도 익주 지역을 빼앗아야 한다고 적극 주장했다는 기록을 봐서는, 그가 익주 지역 공격을 망설였던 이유는 공격할 명분이 부족했던 것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잘 훈련된 유비의 군대가 익주 지역을 공략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중요한 지역을 얻은 대신에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 바로 방통의 죽음이었다.


유비는 익주 지역을 얻고, 세력을 정비하여 바로 한중 지역까지 진출한다. 조조와의 치열한 전쟁에서 승리한 그는 마침내 한중 지역을 차지하고 한중왕에 오르게 된다. 동네 의용군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형주, 익주, 한중 지역까지 얻은 그의 인생 최대 전성기라고 할 수 있겠다. 

 

아우들의 복수를 하지 못하고 떠나다

하지만 유비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다. 관우가 손권에게 패하면서 형주지역을 잃고, 자신의 목숨도 잃게 되었다. 이어서 복수의 준비를 하던 장비마저 부하의 배신으로 사망하게 되자, 이제부터 그의 삶은 동생의 복수를 위한 시간으로 변해버렸다.

 

221년 4월 촉한의 황제로 즉위한 그는, 바로 다음 해에 동생들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 정벌에 나선다. 이때 오나라 정벌은 제갈량, 조운 등 많은 대신들이 반대하였지만 그에겐 오직 동생들의 복수 밖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승승장구했던 그의 군대였지만, 결정적인 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 오나라 정벌은 실패하게 된다. 이 전쟁의 패배로 인해서 그는 병을 얻고 말았고, 마침내 63 살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만약에 그가 대신들의 말대로 오나라 정벌을 하지 않고 국력을 쌓아 위나라를 정벌하였으면, 조조가 죽고 혼란스러웠던 위나라의 사정상 쉽게 막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동생들의 복수를 택하였고,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삼 형제는 그렇게 최후를 맞이한 것이었다.

유비의 아들 유선이 촉한의 2대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이후, 촉한은 제갈량의 노력으로 한때 국력을 많이 회복하였지만, 제갈량의 사후 급격히 나라가 혼란스러워지며, 끝내 263년 위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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