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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가 남긴 유명한 말 중에, 법은 악법이라도 법이어서 따라야 한다고 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잘못된 사실이다.

 

괴짜 고대 철학자에 대하여 알아보자

소크라테스는 일단 옷차림부터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본인의 정신력은 누구보다 강하고 아름다워 겉으로 보이는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맨발에 헌 옷을 걸치고 다녔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정신적 수련이 부족해서 불편하게 차려입고 다니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버지의 석공 일을 배우며 몸이 단련이 된 덕분인지 나름 근육질 몸을 자랑하였다고 하지만 얼굴은 못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연설을 할 때 대중들에게 크게 인기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얼굴도 못생긴 데다 맨발로 다니고, 옷도 대충 입고 다니니 그 당시 화려한 아테네 시민들이 좋아했을 리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역시 똑똑했다. 잘생긴 제자를 연설할 때 데리고 다니면서 점점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강건한 남자였다는 사실은 여러 기록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그는 40세까지 무려 세 번이나 전쟁터에 징집돼서 참여하게 되었는데, 모두 별다른 부상 없이 살아서 돌아왔다고 한다. 참혹한 고대 전쟁을 생각하면 그를 연약하고 마른 철학자의 모습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소크라테스가 참여한 전쟁에서 아테네군이 크게 져서 먼 길을 돌아서 후퇴했어야 했는데, 고되고 힘든 상황에서도 그는 동요하지 않고 패잔병들을 잘 이끌고 무사히 아테네로 귀환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에 대해서는 악처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그가 아내와 부부싸움을 할 때, 아내가 소리 지르고 흥분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정신수양에 도움이 됐다고 농담 삼아 사람들에게 했던 말이 와전됐을 가능성이 크다. 아내 입장에서만 본다면 옷은 거지같이 입고 다니고 토론을 한다며 하루 종일 나갔다 들어오는 남편이 좋았을 리가 없을 것이다.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석공소 일도 안 하고, 철학한다며 돌아다니면서 생계비도 안 벌어오는 남편을 어떤 아내가 좋아하겠는가. 그래도 소크라테스 아내는 끝까지 그와 결혼 생활을 유지하였고, 그가 사형을 당했을 땐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통곡하였다고 한다. 이 정도면 악처라기 보단 진정한 사랑꾼의 모습인 것이다.

아테네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토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사상이나 생애를 글로 남긴 적이 없었다.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제자들이 적어서 남겼거나, 구전으로 내려오던 얘기들을 후세 사람들이 책으로 정리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주로 아테네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광장 등에서 토론하는 것으로만 활동했다. 자신만의 문답법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본인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결국 깨닫게 만드는 토론을 하면서 돌아다녔다고 한다.

 

이런 방식의 토론으로 당시 삐툴어진 사고방식으로 궤변을 늘어놓으며 아테네 사람들을 선동하는 무리들을 쫓아냈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일도 안 하고 하루 종일 광장에서 사람들을 모아 두고 수다나 떤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소크라테스 나름대로는 사회정화 사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아테네는 민주주의가 몰락해가는 시기였다. 사람들의 개인주의는 극에 달해 있었고, 성생활 등의 도덕 윤리도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이 타락해가는 이유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단한 소크라테스는 결국 그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인간 본연의 선함을 알게 해주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말하는 진정한 지식의 시작이었다. 당시 아테네에서의 광장은 시민들의 여론이 형성되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곳이기도 하였다.

악법은 법이 아니다

그의 문답법대로 대화를 진행하다 보면 당시 신의 존재를 굳게 믿던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오게 된다. 이는 당시의 일부 아테네 사람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고, 결국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상을 전파하고 다닌다는 명목으로 재판을 받게 됐다.

 

소크라테스가 재판에서 사형을 받고, 사약을 먹기 전에 악법이라도 따라야 한다는 말을 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사약을 완강히 거부하여 사람들이 억지로 입을 벌려 사약을 삼키게 했다고 전해진다. 그럼 이 말은 어디서 나온 걸까. 바로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식민통치를 순순히 받아들이라는 뜻으로 일본의 어느 철학자가 말한 궤변이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잘못 전해지게 된 것이다. 악법은 법이 아니다.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는 법이면 고쳐져야 한다. 

그의 사망 이후, 그의 제자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전파하고 다녔다. 플라톤의 이런 활동이 없었다면 어떤 책도 집필하지 않았던 소크라테스는 오늘날 아무도 모르는 그저 평범한 아테네 시민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이후, 플라톤의 가르침을 받고 또 한 명의 위대한 철학자가 탄생한다. 그는 바로 서양 철학의 황금기를 완성한 "아리스토텔레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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