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자의 탄생
포은 정몽주는 1338년 경상북도 영일에서 성균관 유생 출신인 정운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인 정운관이 꿈을 꾸었는데 주나라의 성인인 주공이란 인물이 나와 아들이 나라의 충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몽주의 이름을 몽주(꿈에서 본 주공)라고 지었다고 한다. 훗날, 고려를 위해 비장하게 죽은 충신의 탄생을 알리는 태몽이었던 것이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경북 중부 지역은 성리학을 연구하고 배우는 선비들이 많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정몽주는 이색을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을 배워나갔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기억력과 암기력이 뛰어났고 책을 매우 좋아하였다고 한다.
정몽주는 이색의 학당에 있을 때도 대학자로서의 비범함을 보이게 된다. 당시 고려에는 성리학을 다룬 책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는데, 그는 몇 권 안 되는 책을 읽고 복잡한 성리학의 핵심 내용을 모두 파악했다고 한다.
그의 학문적 완성도를 높이 평가한 이색은 고려의 성리학은 앞으로 정몽주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극찬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색의 학당에는 또 다른 범상치 않은 인물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바로 삼봉 정도전이었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둘이 힘을 모아 성리학의 뜻대로 부패한 고려사회를 개혁하자는 굳은 다짐을 한다. 하지만 훗날, 정몽주와 정도전은 각기 다른 정치적 신념을 가진 정적이 되고 만다.
고려 최고 인재가 되다
정몽주는 1360년 고려 공민왕 시절 20대 초반에 과거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관직을 받게 된다. 관료 생활을 시작하고 많은 활동을 하였는데, 초반부터 그의 운명에 막대한 인물과 인연을 맺었다. 바로 이성계와 여진족 토벌전에 같이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이때, 그는 이성계의 인성과 포부에 감동하여 이성계 일파 등과 가깝게 교류하였고, 훗날 자신을 살해하는 이방원과의 만남도 이루어진다.
정몽주는 특히 명나라와의 외교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다. 당시 중국 대륙은 명나라가 새롭게 등장하여 원나라와 대립하고 있었는데, 명나라에게도 고려와의 국교가 중요한 시기였다. 정몽주는 원나라보다 명나라와의 국교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명나라의 황제는 자신들에게 우호적이고 명석한 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다고 한다.
한 번은 정몽주가 명나라를 갔다가 귀국하는 길에 난파 사고를 당했는데, 명나라 황제인 주원장이 반드시 그를 살려내라는 명령까지 했다고 한다. 한때, 정몽주는 신돈의 일파로 몰려 큰 위기에 빠졌었는데, 그가 명나라와의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사히 계속 고려의 중요 인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외교관으로서 그의 활약은 일본에서도 계속되었다. 1377년 일본의 규슈 지역으로 가서 그들과 협상을 하여 일본에 잡혀갔던 고려 포로 수백 명을 데리고 무사히 귀환하기도 했다. 이때, 일본 측에서는 포로를 돌려보낼 계획이 없었는데, 정몽주의 학식과 기품에 매료돼서 그가 포로 송환을 요청하자 받아주었다고 한다.
1380년에는 이성계를 보좌하며 황산대첩을 이끌어내며 왜구 토벌에도 큰 공을 세우게 된다. 군사 참모 역할도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이성계와 여진족 토벌에서도 함께하며 친분을 쌓은 그는 마침내 자신의 친구인 정도전을 이성계에게 소개해준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를 한 것이었고, 그때는 그것이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는 고려를 멸망하게 하는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슬픈 충신의 운명
정몽주는 이성계 일파와 뜻을 같이하며 위화도 회군 및 고려의 부정부패를 일삼는 관료들을 제거하였다. 그는 잘못된 것을 개혁하여 고려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이성계 일파의 개혁은 급진적이었고 급기야 고려를 없애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려고 하였다. 이를 알아챈 그는 어떻게든 이성계 일파를 막아서 고려를 지켜보려고 하였지만, 군대를 장학하고 있는 그들에게 맞서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굽히지 않았다. 오직 신하는 충신이어야 한다는 명분 하나로 이성계 일파와 맞섰던 것이다.
그러던 중, 이성계가 병이 들어 누워있다는 소식을 들은 정몽주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성계 집으로 병문안을 가게 된다. 이 시기에는 정몽주와 이성계 일파와의 사이가 굉장히 좋지 않았다.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기 직전이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 정몽주는 정적의 집에 홀로 방문한 것이다. 어쩌면 이미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고 판단한 정몽주가 죽음을 무릅쓰고 이성계를 마지막으로 설득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고려의 충신은 선죽교에서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에게 살해를 당한다. 그리고 정몽주가 사망 후 얼마 안 되어서,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고려는 이성계에 의해 멸명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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