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
연개소문

정권을 장악하다

연개소문은 고구려 최고 직위인 막리지를 지낸 연태조의 아들이다. 당시 연씨 가문은 고구려의 대표 가문 중에 하나였고, 아버지가 막리지 지위를 지낸 덕에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둥부대인의 자리에 오른 그에게 천리장성 축조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당시 연씨 가문은 고구려 최고 가문이었고, 그런 가문의 지위를 이어받아 동부대인의 자리까지 오른 연개소문에게 북쪽 변방에 있는 천리장성 축조 임무가 주어진 것은 정상적인 일이라고 볼 수 없다. 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영류왕과 다른 대신들이 의도적으로 그를 변방으로 보냈다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영류왕과 대신들은 연개소문을 죽이고자 했고,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계획을 알아냈다. 이에 그는 동부가문의 병사들의 훈련 행사에 대신들을 초대하고, 모든 대신들이 모이자 군사들에게 명령해 자신을 반대하던 대신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그리고 군사들을 이끌고 궁궐로 쳐들어가서 영류왕을 살해한다. 마침내 연개소문이 정권을 장악하고, 고구려 최고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역사 기록에는 연개소문과 영류왕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나와있지 않다. 연개소문의 가문과 영류왕은 수나라 침공에 맞서 끝까지 싸워 이겨낼 만큼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그 갈등의 원인이 더욱 궁금하다. 역사학자들은 연개소문의 군사 정변이 비교적 쉽게 성공했다는 사실을 분석하여, 군대 세력의 상당수가 그의 군사 정변에 동조했다고 보았다.

 

당시 영류왕은 당나라의 요구에 의해 수나라와의 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쌓은 승전탑도 무너뜨리는 만큼 당나라에 우호적인 외교를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군대 세력은 광개토 대왕 때부터 이어진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을 유지해왔고,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수나라와도 결사항전을 펼쳐왔던 것이었다. 이런 영류왕의 당나라 우호 정치와 고구려 군부와의 갈등이 커진 상황에서 연개소문의 가문이 군대 세력을 대표해서 군사 정변을 일으켰다고 보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당나라와의 전쟁

당나라와의 전쟁을 위해 먼저 당나라와 연합하여 후방에서 고구려를 위협하는 신라를 공격하여 군사적 요충지를 점령한다. 당나라는 황제인 이세민이 대군을 직접 이끌고 쳐들어왔고, 전쟁 초기에는 여러 성들을 빼앗기며 고전하였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안시성 전투에서 계속 승리하면서 요동 방어선을 지켜냈다.

 

패전하며 돌아가는 당나라 군대를 추격하여 황제인 이세민을 죽음 직전까지 이르게 했던 전쟁 기록을 보아 고구려의 대승으로 끝난 전쟁이었다. 당시 당나라는 수나라에 이어 국가가 설립된 초창기였고, 여러 제도들이 잘 정비되어 전성기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당나라 군대에 맞서 승리를 거둔 연개소문의 고구려의 승리는 대단한 것이었다.

 

연개소문의 죽음과 고구려의 멸망

첫 번째 당나라와의 전쟁 이후에도, 당나라와의 전쟁은 여러 차례 계속되었고, 그때마다 연개소문은 모두 막아내고 승리하게 된다. 하지만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면서 전쟁 상황이 고구려에 불리하게 바뀌고, 결정적으로
당나라와의 전쟁을 지휘해왔던 연개소문이 666년 사망하고 만다.

 

그가 사망 후, 그의 세 아들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군대 세력 간에 내분이 일어나게 된다. 668년 결국 고구려는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였다. 연개소문이 사망한 후, 불과 2년 만의 일이었다.

 

연개소문은 고구려 멸망의 원흉인가

영류왕이 당나라에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한 것은 고구려와 당나라 간의 국력차이였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이미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많은 국력이 소진되어 있었다. 당시 당나라는 수나라의 멸망 후에 대륙을 잘 정비하여 수나라를 능가하는 국력을 가지고 있었다.

 

몇 번 정쟁에서 승리를 한다고 해도, 당나라가 끊임없이 쳐들어온다면 결국 막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영류왕의 걱정대로 고구려는 마침내 국력이 소진되고, 내부 분열까지 일어나며 자멸한다. 결과로만 보면 연개소문은 고구려를 끊임없는 전쟁으로 멸망하게 한 원흉으로 볼 수 있다.


그럼 영류왕의 생각대로 당나라와의 우호적인 정책을 지속했으면 평화가 유지됐을까. 평화는 유지되지만 국민들의 정신은 약해지고, 이내 자발적인 속국으로 전락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에서 보더라도 조선은 중국 대륙과의 외교에서 평화를 택했고, 속국을 자처했다. 이렇게 의존적인 평화로 약해진 국력으로 인해, 여러 번의 외국의 침략에서 매번 괴멸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평화는 누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고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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