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의 자리에 오르다
당 제국의 개국공신의 딸로 태어난 무조(측천무후의 이름)는 당 태종 이세민에 발탁되어 12세의 나이로 후궁이 되었다. 무조의 아름다운 용모는 당 태종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인 이치(훗날 고종)도 그녀에게 반하게 만들었다. 이세민이 사망한 후에, 무조는 법에 따라 절에서 평생 죽은 황제를 추모하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이치가 이세민의 뒤를 이어 고종 황제가 되고, 무조를 잊지 못하였던 고종은 무조를 다시 황궁으로 불러들여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다.
후궁이 된 무조는 황궁에서 살아남아서 권력을 잡기 위해 제거해야 할 두 명의 여인이 있었다. 두 명의 여인은 바로 고종의 부인인 왕황후와 후궁 소숙비였다. 그녀들을 제거하기 위해 무조는 끔찍한 계획을 세운다. 그 당시, 후궁인 무조는 고종의 아들과 딸을 낳았고, 고종은 특히 무조와 닮은 예쁜 딸의 탄생을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왕황후가 공주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무조의 처소를 방문했으나 방에 무조는 없었고, 공주만 누워서 자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왕황후는 무조를 기다리며 방에서 머무르다 돌아갔다. 하지만 왕황후가 무조의 방에 있었을 때, 공주는 이미 무조가 목졸라서 살해한 뒤였고, 왕황후는 무조의 덫에 걸리게 되었다.
왕황후는 질투심에 눈이 멀어서 공주를 죽였다는 모함을 받았고, 왕황후와 소숙비는 제거되게 된다. 왕황후와 소숙비가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고종이 가장 총애하던 무조가 다음 황후에 오르게 되었다.
무조는 왕황후와 소숙비를 굉장히 잔인하게 처형하게 된다. 팔다리를 자르고 머리만 남은 몸통을 술독에 빠트려 죽였다고 전해지는데, 소숙비는 죽어가면서 무조에게 다음 생애에 고양이로 태어나서 너의 목을 물어뜯어 죽이겠다는 저주를 했다고 한다. 이후에 황궁에서는 누구도 고양이를 키우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자신의 딸까지 스스로 죽이면서까지 황후에 오른 무조의 다음 목표는 황제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중국 최초의 여황제. 측천무후
황후과 된 무조는 마음이 약하고 병약했던 고종을 대신하여 권력을 잡기 시작한다. 그녀는 뛰어난 정치력으로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해 나가면서 마침내 고종 황제의 권력을 넘어서게 된다. 이제 무조의 권력에 도전하는 세력은 하나밖에 없었으니, 바로 그녀의 아들들이었다. 첫째 아들 태자 이홍이 있었지만, 그는 식사 중에 갑자기 죽고 만다. 이를 두고 무조가 독살을 했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다. 황후가 되기 위해 자신의 딸까지 살해했던 무조여서 독살설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고종이 죽고 무조의 둘째 아들이 황제가 되었지만, 무조의 권력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쫓겨나고 만다. 이후로도 몇 번을 그녀의 아들들이 차례로 황제 자리에 올랐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쫓겨나고, 마침내 690년 무조는 나라 이름을 주로 바꾸고 자신이 직접 황제가 된다. 드디어 중국 역사 최초 유일한 여자 황제인 측천무후가 된 것이었다.
측천무후의 평가
측천무후는 역사적으로 나쁜 평가를 받아왔다. 그녀가 여성의 신분으로 황제의 권력을 능가하며 황제의 지위를 대신하였고, 마침내 아들들까지 몰아내고 황제가 된 것에 대해 그 당시 역사학자들은 좋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의 평가와는 반대로 그녀가 권력을 잡고 있는 동안에 민중의 삶은 오히려 안정적이어서 나라가 평안하였다고 한다.
민중의 소리를 듣기 위해 신문고 같은 제도를 도입한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면 그녀가 민중 생활 안정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귀족 위주의 관리 등용 제도를 없애고,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임용 시험 제도를 만들었다. 이후 그녀가 등용한 인재들은 당나라의 전성기를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측천무후는 황후가 돼서 사망할 때까지 50여 년을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중국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여황제였다. 그녀는 자신의 묘비에 한 글자도 세 기지 말라는 범상치 않은 유언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실제로 측천무후의 묘비는 글자가 없는 비석으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고, 사람들은 이것을 "무자비"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굳이 비석에 적지 않아도 자신의 행적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는 측천무후의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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